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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Movie2008/08/1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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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
감독 :  스탠리 큐브릭
출연 :  말콤 맥도웰, 패트릭 마지, 마이클 베이츠, 워렌 클라크
기타 :  미개봉 / 137 분/SF, 드라마

Alexander the Large


붉은 색과 푸른 색의 극명한 화면 대비로 영화는 시작한다.

Alex는 여자들이 눈을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속눈썹을 오른쪽 눈의 위아래로 붙이고 앞을 노려보고 있는데 말콤 맥도웰이 비록 크고 예쁜 눈을 가졌다 하더라도 이것은 당혹스럽고 혹은 역겨운 것이었다.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한 곳 -- Koloba Milkbar - 에 앉아 우유를 먹고 있는데 애나 입을 듯한 기저귀 같은 것을 바지 위에 입고 하얀 색의 멜빵을 맸다. 기저귀를 겉에 입었다는 사실을 빼면 영락없는 아이의 옷차림이다. 그것은 질서나 선악의 구분이 없는 상태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의 벨트와 팔목을 자세히 보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못이 있었을 만한 위치에 핏자국과 함께 강제로 뽑아낸 것처럼 보이는 눈알 모양이 붙어 있다. 장난처럼 예수를 조롱하는 듯 하다.


  Alex는 천진하다. 어른이 품에 안긴 아기가 손을 휘젓다가 어른의 뺨을 때리듯 아무런 죄의식 없이 아무 행동이나 저지른다. 그러나 본능은 대개 금기시 되어 있으므로 善한 행동을 하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아기 같은 그들은 자연 상태처럼 ‘힘있는 자’의 위치에 서서 약한 자에 대해 횡포를 마음껏 저지른다.


 긴 그림자를 터널에 드리운 네 명의 christ는 술에 절어서 노래를 부르는 영감을, 별다른 이유 없이 다만 더럽고 역겨워 기분을 나쁘게 했다는 이유로 - 사실 그다지 기분 나빠 보이지 않는다. 쾌락을 앞둔 얼굴로 - 영감을 사정없이 패고 다른 여자를 강간하려는, 자신들과 비슷해 보이는 다른 집단과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몽둥이와 체인이 공기를 가르고 몸이 날아다니는 전투지만 본능에 충실한 폭력을 행하는 그들의 기분처럼 아주 유쾌하게 그려진다. 경쾌하고 들뜬 분위기의 로신니의 ‘도둑 까치 서곡’이 그들의 전투를 한 편의 무용을 보는 듯 즐겁게 바꾸어 놓는다. 


 그들은 이제 차를 몰아 어디로 향하기 시작한다. rule이 지배하는 도로를 달리고 있지만 그들이 그런 것에 신경을 쓸 리 없다. - 그 당시의 영상 기술의 한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달리는 공간과 분리된 듯 한, 이질감을 주는 장면 또한 그들이 그 rule 밖에 있음을 보여 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듯 하다. -


 그렇게 달려서 Home의 표시가 있는 서쪽 집에 도착한다. 알렉스가 누르는 초인종 소리는 마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도입부처럼 들린다. 사고처럼 위장한 그들은 집으로 들어가 부부를 묶고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책이 가득 찬 책장을 넘어뜨리고 책상 위에 있는 문명의 도구들을 치워버리기도 하고 여자를 어깨에 메고 돌리며 장난감을 주무르듯 만지기 시작한다. 가끔 그들의 폭력성을 자극하는 우유를 마셔서인지 즐거운 아기처럼 소리치며 마음껏 부수다가 ‘Singing in the rain'을 부르면서 공을 튀기며 춤을 춘다. 이따금씩 작가의 배나 관절을 발로 차주는 것을 잊지 않으며, 폭력의 마지막은 당연하게 강간으로 끝난다.


 열심히 일하고 술 한 잔에 피로를 달래려는 농부처럼, 그들은 에너지 소모를 보충하기 위해 우유를 마시러 간다. 어떤 여자의 베토벤 노래에 그들은 ‘매너’를 이야기하고 그것은 표면적으로 다른 이들의 질서와 같지만 그들만의 질서인 명령과 복종의 관계라는 의미를 가지며 힘에 의해서만 그것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반발이 일어난다.


  그가 살고 있는 공간 근처는 그의 삶만큼이나 자유롭다. 고대 이집트 그림에 잔뜩 덧그려진 성기와 글씨들, 주위의 나무와 쓰레기 그리고 브래지어는 무질서와 본능의 공간임을 보여준다. 그의 방 또한 마찬가지다.


 질서와 통제에 대한 조롱이 확실해지는 것은 그의 방이다. 책상 위에 있는 예수상 - 보통의 그것과는 달리 못이 그대로 남아있는 - 그가 ‘Singing in the rain'을 부를 때와 같은 포즈로 나란히 서 있는 네 명의 예수 상이다. 그와 인간의 죄, 모두를 부끄러워하는 우리의 예수와 달리 그의 예수는 그의 성기, 성욕을 강하게 내보인다. 겉모습은 예수와 더 닮았을지 몰라도 Alex는 그림의 여자 성기 주위에서 맴도는 성기와 닮은 뱀과 더 닮아 보인다.


 자기 방에 번호로 된 자물쇠를 달아 놓은 Alex, 그 자신을 무질서 안에서 강자의 위치에 두고 있지만 그 무질서를 겁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Alex는 베토벤을 들으며 죽음과 파괴를 상상한다. Alex의 얼굴은 어딘가 베토벤과 닮아 보인다.


 학교라는 질서, 교화의 공간을 거부하는 Alex에게 감독관이 찾아와 “Is it some devil that crawls inside of you (네 속에는 악마라도 들은 거냐)?‘라고 말한다. 이것은 safety 안에 있는 그들이 통제하려는 시도는 있으나 통제되고 있지 않은 Alex를 보는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경찰의 손을 벗어난 지 오래 되었다는 Alex의 말에 답한 ’그래서 안전(safety)을 보존하기가 어려졌다‘는 감독관의 말은 무질서한 상태에서는 자신을 지키기가 힘들 것이라는 통제하려는 자의 시각을 보여 주며 그 안전이 Alex의 안전보다는 질서 안에 있는 사람들의 안전을 의미하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 대본에는 reasonable 이었으나 영화 속에서는 safe로 바뀌었다. -

  Alex는 그런 통제의 시도를 무시하고 다시 놀러 나간다. 귀족이나 입을 것 같은 폼 나는 옷을 입은 채 - 매혹의 가면을 쓴 것처럼 - 음반 가게에 가서 하인에게 시키듯 음반을 찾아오라고 하고 , 성기 모양의 사탕을 먹는 여자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겠다며 유혹한다. 그들의 섹스는 장난처럼 즐겁다.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추어 행진을 하듯, 춤을 추듯 왔다 갔다 하면서 벌이는 그들의 섹스는 가벼운 유희처럼 보인다.


 Alex의 지배 체제에 점차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힘에만 의존한 권위, 그리고 그 권위에 따르는 질서는 절대적으로 강한 힘을 유지하지 못하면 깨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Dim의 반항에서 볼 수 있듯이 Alex의 힘을 넘어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Alex의 부하들은 점점 그의 지배 체제를 부정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CatLady의 집을 털러 가자며 은근히 Alex를 무시하기에 이르고 Alex의 부하들은 Alex를 그들 마음대로 끌고 가는 데는 성공한다. 그러나 Alex는 ‘신의 계시와 하느님의 계시로’ 그런 도전에 대한 가혹한 응징을 가한다. 그리고 관대하게 그들을 용서한다.


 그들의 새로운 목표는 CatLady의 집이다. 그녀는 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몸을 잘 가꾸기 위해 체조를 하고 있다. 체조복으로 가려져 있지만 굽어진 채로 관객의 낯을 향해 성기를  - 애써 - 내미는 그녀의 자세는 그녀 방에 가득 찬 예술품들처럼 도발적이고 이제 조금은 역겹다. 그것들은 모두 Alex를 위한 선물인양 모두 sexual하다. Alex 패거리는 전처럼 사고로 위장하여 집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실패하고 Alex가 창을 통해 집에 직접 들어간다. 집에 들어간 Alex는 CatLady의 예술품에 감탄하고는 CatLady와 격투를 벌인다. 성기 모양의 도자기를 든 Alex와 베토벤 두상을 든 CatLady. 그들의 무기는 모두 통제 밖의 Alex의 상징으로, 외딴 곳에 고양이와 같이 사는 CatLady는 공간적으론 Alex와 닮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성기 모양의 예술품을 CatLady의 - 성기와 그 의미가 닿아 있는 - 입에 처박아 그녀를 죽이게 된 Alex. 하지만 의심이 많은 고양이처럼 CatLady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 통제와 통제 밖의 중간적 존재 - 그의 지배에 불만이 가득했던 그의 패거리들은 그에게 맛있는 Milk가 든 병을 던져 코를 부러뜨린다.


  이전의 惡行과는 달리 CatLady의 집에 도둑질을 하러 간 것은 그의 삶을 완전히 돌려놓게 된다. Alex가 국가 권력의 통제 내로 편입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따라서 애들의 옷에서 양복으로 갈아입고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남이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요구받게 된다.


  체포되고도 질서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Alex는 목소리 큰 것이 마치 권위인양 구는 Chief Guard에 의해 조금씩 ‘교화’되어 질서를 배우게 된다. 이제 말끝에는 항상 ‘Sir'를 붙이고 교도관에게 다가갈 때는 항상 흰 선 밖에서 있어야하며 공손하게 물건을 건네고 ‘6655321’의 번호를 이름 대신 쓴다. 이런 교도소의 생활은 당연히 Alex에게 재미없다. 무조건적인 善을 부르짖는 목사의 설교는 경찰에게도 지루해서 걸핏하면 수감자들의 방귀와 트림으로 조롱당하기 일쑤이고 개인의 존재 따윈 전혀 중요치 않은 생활 속에서 운동이라곤 기계처럼 흰 선 위를 조용히 그리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것뿐이었다. 완전한 격리를 주장하는 교도관의 말처럼 그 수감의 목적이 범죄자를 안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재사회화하는 것, 교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격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엄연한 폭력이다. 


 나아진 척 하기 위해 성경책을 공부하는 Alex는 어디까지나 범죄자들 사이에 끼어 있을 뿐 진정한 죄인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십자가를 끌고 가는 Christ를 채찍으로 때리는 상상을 하며 만족스런 표정을 짓는다. 역시 그에게는 때리고 맞는 싸움 이야기만이 흥미를 끌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Alex의 방에 가득 찬 베토벤의 두상과 그림, 그리고 벽을 가득 채운 야한 그림들에서도 눈치 챌 수 있다.


 그러다 그에게 지루한 교도소 생활을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찾아오는데 그것은 약물 치료를 통해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만드는 루드비커 법이었다.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Alex는 병원에 오게 되고 ‘격리’를 주장하는 교도관은 그 방식을 신뢰할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을 보낸다. 병원에 도착하여 의사 앞에 다리를 높이 들어 큰 발소리를 내며 서는 Alex의 과장된 몸짓은 군인들의 사열과 교련과목을 떠올리게 했다. 이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인 분노와 성욕, 기호 자체를 부정하는 가혹하고 잔인한 루드비커 법 - 폭력을 제거하는 장치로서의 폭력 - 과 더불어 사회화를 조롱하는 듯 하다.


 머리에 전기 신호를 넣을 수 있는 장치를 단 Alex는 주사를 맞고 영화 속에서 음악을 듣고 폭력과 파괴와 강간을 지켜보며 점차 그것들에 대해서 구역질을 나는 것을 느낀다. 튀어나올 것 같은 그의 큰 눈과 계속되는 트림 소리에 관객 또한 구역질이 날 것 같다. - 가끔은 ‘똥’이라는 말을 들으면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사회화다. - ‘신이 너를 미치도록 고문하길 바란다.’고 감독관이 말했던 것처럼 Alex는 계속 고통을 받고 적응해 간다. 그런 Alex를 두고 ‘getting better'라 하는 것은 그들은 겉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치료를 전부 받고 Alex는 그 치료법의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무대에 선다. Psycho-Drama 무대에 선 Alex는 예전처럼 폭력을 쓸 수도 없고 섹시한 여자 앞에서 성욕만큼이나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확인시켜준다.


 이에 성선설을 대표하는 목사는 Alex가 루드비커 법을 처음 물을 때처럼 善을 행하는 자유 의지가 중요함을 강하게 주장하지만 사람들은 살인을 저지른 절대적인 惡인 Alex를 ‘치유’한 결과를 보고 루드비커 법과 그것을 통한 치료를 善으로 인정한다. 치료를 검증하러 나온 사람들이 무대 인사를 화려하게 하고 나가는 것처럼 어차피 무대 위에서 일어난 쇼일 뿐이지만 사람들은 Alex가 그 마음과는 상관없이 치료되었다고 믿는다.


  치료가 끝난 Alex는 다시 그의 공간으로 돌아오려 하지만 부모의 집에서 Alex의 공간은 용납되지 않는다. 또한 그는 약자가 되어 걸인들이 휘두르는 폭력 - 보복 -의 희생자가 될 뿐이었다. 그러다 자신을 구하러 온 경찰들이 낯익은 얼굴임에 놀란다. Alex 패거리에 있던 Dim과 Georgie이었다. “Wow~ Wow~ Wow~" Alex와 함께 무질서 안에 있었던 그들이 통제하는 입장에 서 있게 된 것이었다. 이것은 그 정부의 정책에 하나였다. Alex를 치료할 때 내무부 장관이 했던 ”The problem of criminal violence is soon to be a thing of the past.(범죄는 곧 과거의 일이 될 것이다.)“, "Our subject is impelled towards good by paradoxically being impelled toward evil. (선한 쪽으로 추진하면 오히려 악한 쪽으로 이루어진다.)“ 는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 본래 모습이란 없다는 도가의 생각과도 닿아 있다. -


 그들은 이제 합법적인 틀 안에서 폭력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Alex를 숲으로 끌고 가 말이 물을 먹는 통에 머리를 처박고 고문하고 낄낄대며 웃는다. Alex를 양쪽에서 잡고 가는 그들의 어깨엔 665와 667이란 번호가 새겨져 있는데 그들 사이에 낀 번호인 666은 善의 Christ의 적인 적그리스도 네로를 상징하는 것이다. 근원적인 악의 상징이기도 한 그 숫자는 Alex가 전혀 치유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는 고통에 취해 Home으로 다시 간다. 그가 작가를 불구로 만들고 그의 아내를 강간했던 그 부부의 공간이었다. 그 아내는 죽고 작가는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되어 간병인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작가는 Alex가 저지른 일은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그를 불러들인다. Alex는 그가 그 때 가면을 쓰고 있어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의 코 큰 가면(persona)을 벗고 맨 얼굴로 선 것이 아니라 루드비커 법에 희생된 안타까운 사람이라는 또 다른 가면을 쓰고 있는 상태면서 말이다. 그러다 Alex가 샤워를 하면서 부른 노래 때문에 작가는 그의 죄를 기억해 내고는 살의를 느끼지만 정치적 목적 때문에 살려 둔다. 루드비커 법의 부작용을 보이기 위해 감금되어 그 고문을 다시 받게 된 Alex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투신한다. 그의 괴로운 비명을 즐기는 또 다른 Alexander, 작가를 뒤로 한 채.


 병원에 다시 돌아온 Alex는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

Alex는 내무부 장관과 타협하여 그와 좋은 관계임을 보여 주고 일정한 지위를 보장받기로 한다. 질서 밖에 있으려는 자와 통제하려는 자의 싸움에서 타협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겉으로는 Alex가 기성의 지위를 받고 기존 질서를 유지시켜 주는 것이어서 Alex의 패배로도 볼 수 있지만 Alex는 그 자신을 잃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말 “I'm cured all right. (완전히 치료되었군)”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강간을 상상하고도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된 것처럼 루드비커 법의 치료 전의 상태로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한 이제는 질서 안에서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유달리 같은 단어를 반복하여 여러 번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로 같은 말을 여러 번 하는 경우가 있지만 보통은 당황한 경우나 맞장구치는 경우다. 그러나 “Right~! Right~!" "Wow~! Wow~! Wow~! Wow~!"처럼 그들은 말을 길게 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이 내 말을 듣게 하는 것 자체가 권위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주로 강자의 입장에 있을 때 웃으며 그런 반복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Alex는 그렇게 자신의 권위를 확인하고 유지하는 도구로 그런 말투를 썼던 것 같다. 그만큼 그의 지위, 권위는 그가 가지고 있는 힘처럼 불안정한 것이었다.

그의 이름 Alexander the Large는 일단 Alexander, 즉 사람들의 지도자라는 뜻과 통하며 'a lex'에서 lex는 icon의 뜻이 있으므로 '그 자신의 언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그리스어로 ‘a’의 없다는 뜻을 사용하면 ‘법이 없는' 이라는 뜻이 된다.


 Alex가 다니는 곳에는 Check 무늬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Home 팻말이 있는 집의 Chess 판 바닥이나 Alex의 집 부엌 벽이 그렇다. 이런 Check 무늬들은 인위적으로 구분되어 나누어진 기준들을 상징하며 그것이 바닥인 경우에는 밟고 지나가면서 선과 악 같은 것을 넘나드는 것을 의미하며, 벽의 경우에는 시선이 통과한다는 것에 의해서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조금만 움직여도 정해진 곳을 벗어나게 되고 또한 수많은 다른 점이 모여 하나의 색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점묘법과 같이 그런 구분들 또한 멀리서 보면 하나같이 보인다는 의미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자아는 완전히 치료된 후의 자아다. 그 자아는 그가 치료를 받기 전의 행동들을 반성하지 않는다. Alex가 한 번의 거래를 한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라는 노자의 말처럼 정확히 규정된, 본 모습이라는 것은 없다. 그는 그렇게 존재하고 어떤 식으로든 바뀔 수 있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posted on 2004/11/17
Posted by prayforgauss